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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능력주의 윤리
    '공정함과 정의' 2024. 3. 26.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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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이 이상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능력주의의 유일한 문제는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기회의 평등을 완벽하게 가다듬는 것만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구성원들이 어떤 출발점에 서 있든 노력과 재능이 허락하는 한 얼마든지 위로 올라갈 수 있게 하는 것으로 말이다. 그러나 능력주의가 완벽하게 실현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도덕적 또는 정치적으로 만족스러울지는 의문이다. 

     도덕적으로 보자.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반드시 시장 중심 사회가 성공자에게 후하게 베풀기 마련인 어마어마한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능력주의 윤리의 핵심은 '통제 불가능한 요인에 근거한보상이나 박탈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정한 재능의 소유(또는 결여)를 순전히 각자의 몫으로 봐도 될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재능 덕분에 상류층으로 올라는 사람들이, 그와 똑같이 노력했지만 시장이 반기는 재능은 없는 탓에 뒤떨어져 버린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능력주의 이념에 찬성하며 그것을 자신들의 정치 신념으로 삼는 사람들은 이러한 도덕적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 그들은 또 더 큰 정치적 의미를 갖는 문제도 외면한다. 승자들 가운데, 그리고 패자들 가운데 능력주의 윤리가 부추기는 도덕적으로 좋지 못한 태도의 문제다. 능력주의 윤리는 승자들을 오만(hubris)으로, 패자들은 굴욕과 분노로 몰아간다. 이러한 도덕 감정은 엘리트에 대한 포퓰리스트적 반항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다. 이민자들이나 아웃소싱에 대한 반항 차원을 넘어, 포퓰리즘의 불만은 능력주의의 폭정을 향한다. 그리고 그 불만은 정당화된다. 

     '공정한 능력주의 제도를 마련하자', '사회적 위치가 재능과 노력을 반영하게 하자'며 되풀이되는 이야기는 우리가 성공(또는 패배)을 해석하는 방식에 잘못된 영향을 준다. 재능과 노력을 보상하는 체제라고 생각하는 건, 승자들이 승리를 오직 자기 노력의 결과라고, 다 내가 잘나서 성공한 것이라고 여기게끔 한다. 그리고 그보다 운이 나빴던 사람들을 깔보도록 한다. 

     능력주의적 오만은 승자들이 자기 성공을 지나치게 뻐기는 한편 그 버팀목이 된 우연과 타고난 행운은 잊어버리는 경향을 반영한다. 정상에 오른 사람은 자신의 운명에 대한 자격이 있는 것이고, 바닥에 있는 사람 역시 그 운명을 겪을 만하다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기술관료적 정치의 도덕적 자세이기도 하다. 

     우리가 가진 몫이 운의 결과라고 생각하면 보다 겸손해지게 된다. "신의 은총 또는 행운 덕분에 나는 성공할 수 있었어." 그러나 완벽한 능력주의는 그런 감사의 마음을 제거한다. 또한 우리를 공동 운명체로 받아들이는 능력도 경감시킨다. 우리의 재능과 행운이 우연에 따른 것이라고 생각할 때 생기는 연대감을 약화시킨다. 그리하여 능력은 일종의 폭정 혹은 부정의한 통치를 조장하게 된다.   

     

     


    평 : 어찌보면 윤리라는 이름으로 , 능력과 이를 이뤄낸 노력을 희석시키는 듯 하는 글이기도 하다. 공감가는 내용은 자기 성찰없는 성공에 대한 합리화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한다. 본인이 이뤄낸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만이 윤리적으로 자아성찰할수 있고 공동체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시킬 것이다. 이런 공감대가 없을 경우 본인 능력주의에 대한 맹신으로 정치화 대고, 상대적 박탈감을 당연시 하는 계급을 형성시키지 않을까? 이는 세력을 만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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