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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능력 지표
    '공정함과 정의' 2024. 3. 23.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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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평등한 사회에서 꼭대기에 오른 사람들은 자신들의 성공이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 믿고 싶어 한다. 능력주의가 원칙이 되는 사회에서는 승리자가 '나는 나 스스로의 재능과 노력으로 여기에 섰다'고 믿을 수 있어야 한다. 

     역설적으로, 이것이 바로 입시 부정 학부모들이 자녀에게 선물하려 던 것이었다. 그들이 단지 자녀에게 부를 물려줄 마음뿐이었다면 신탁기금 등을 포함한 재물을 주면 그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뭔가 다른 것을 원했다. 명문대 간판이 줄 수 있는 '능력의 지표' 말이다. 

     싱어는 정문으로 들어가는 일이 "여러분 스스로 해내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이 점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의 입시 부정 계획은 차선책이었다. 물론 SAT 점수 조작이나 가짜 특기생 자격증 등을 '스스로 해내는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신들의 부정행위를 자녀에게 비밀로 했던 것이다. 옆문으로 대학에 들어가는 일은 그런 부정행위가 은폐될 때만 정문 입장과 등급의 능력주의적 영애를 얻는다. "우리 부모님이 요트부 감독에게 돈을 찔러줬어. 덕분에 난 스탠포드에 들어왔지." 누구도 이렇게 말하며 긍지를 느끼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능력주의적 대입이 갖는 특질은 뚜렷해 보인다. 정당한 스펙으로 입학한 사람은 자신의 성취에 자부심을 가질 것이며, 이것은 자기 스스로 해낸 결과라 여길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이 역시 문제가 있다. 그러한 입학이 헌신과 노력을 나타내기는하지만, 정말로 오직 '자기 스스로' 해낸 결과라고 볼 수 있을까? 그들이 스스로 해내도록 도와준 부모와 교사의 노력은 뭔가? 타고난 재능과 자질은 그들이 오직 노력으로만 성공하도록 했을까? 우연히 얻은 재능을 계발하고 보상해줄 수 있는 사회에 태어난 행운은?

     노력과 재능의 힘으로 능력 경쟁에서 앞서 가는 사람은 그 경쟁의 그림자에 가려 있는 요소들 덕을 보고 있다. 능력주의가 고조될수록 우리는 그런 요소들을 더더욱 못 보게 된다. 부정이나 뇌물, 부자들만의 특권 따위가 없는 공정한 능력주의 사회라 할지라도 '우리는 우리 스스로 이런 결과를 해냈다' 는 잘못된 인상을 심어준다. 명문대 입학을 위해 요구되는 여러 해 동안의 노력 역시 그들이 '나의 성공은 내 스스로 해낸 것'이라는 인식을 강하게 심어준다. 그리고 만약 입시에 실패하면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닌 자기 자신의 잘못'이라는 인식도 심어주게 된다. 

     이는 청소년들에게 지나친 부담이다. 시민적 감수성에도 유해하다. 우리가 스스로를 자수성가한 사람 또는 자기충족적인 사람으로 볼수록 감사와 겸손을 배우기가 어려워진다. 그리고 그런 감성이 없다면 공동선에 대한 배려도 힘들어지게 된다. 

     

       대학 입시가 능력주의의 유일하 문제는아니다. '누가 여기에 맞는 능력을 갖췄는가?'는 오늘날 정치권의 주요 화두가. 표면적으로 이 논쟁은 공정성 논쟁인 듯 보인다. '탐나는 물건이나 사회적 지위를 놓고 경쟁할 때, 모두가 정말고 공평한 기회를 갖고 있는가?'

     

     그러나 능력주의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의견 불일치는 공정성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성공과 실패 또는 승리와 패배를 어떻게 정의하는가도, 그리고 자신보다 덜 성공한 사람들에 대해 승리자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도 문제다. 이러한 문제들은 대체로 외면 받고 있으며, 우리는 발등에 불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그 문제를 다루지 않으려 한다. 

     오늘날 양극화된 정치 환경을 넘어 길을 찾으려면 능력주의의 장단점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능력주의의 의미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어떻게 달라졌는가? 직업의 귀천 없음을 무너뜨리고, 많은 이들이 엘리트는 교만하다고 여기게끔 달라지지 않았던가? 세계화의 승리자들이 자신들은 '얻을 만한 걸 얻었을 뿐'이라고 스스로를 정당화하다록 그리고 '능력주의적 오만'에 빠지도록 바뀌지 않았던가? 

     엘리트층에 대한 분노가 민주주의를 위험 수준까지 밀어내게 될 때, 능력에 대한 의문은 특별히 중대해진다. 우리는 우리의 갈등 지향적 정치에 필요한 해답이, 과연 능력의 원칙을 더 믿고 따르는 것인가 아니면 계층을 나누고 경쟁시키는 일을 넘어 공동선을 찾는 것인가에 대해 자문해 봐야 할 것이다. 

     


    평 : 양극화 되고 있는 인식에 대한 고찰을 강조하고 있다. 편중되는 부에 대한 결과에 대해 도취된 기득권 또는 소위 엘리트라 불리우는 계급사회가 바라보는 자아 도취, 그리고 자아 도취된 계층이 바라보는 패배자, 즉 루저라 불리우는 사회계층을, 능력이라는 잣대로 바라볼 경우, 발생되는 소외/ 불평등한 상황에 대한 고찰이 필요한 시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으로 당연한 듯이 계급지워지고, 교육기회 또한 독점이 가능하고 세습되어질 때 양극화는 더 심해지지 않을런지 심히 걱정이 되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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