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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빈부격차를 그럴싸하게 설명하는 법
    '공정함과 정의' 2024. 3. 25.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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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노동계급 및 중산층 유권자들이 엘리트들에게 분노를 터뜨리게 된 계기는 뭘까? 해답을 얻으려면 지난 수십 년간의 빈부격차 상황부터 알아봐야 한다. 궁극적으로 사회적 인식 및 존중감의 조건과 관계가 있다. 

     세계화는 그 과실을 불균등하게 배분했다. 미국의 경우 1970년대부터 지금껏 늘어난 국민소득 대부분이 상위10퍼센트에게 돌아갔고, 하위 50퍼센트는 거의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 실질소득 기준 노동가능 연령 인구의 중위소득은 약3만6000달러인데, 그것은 40년 전보다 낮은 수준이다. 오늘날 가장 부유한 1퍼센트의 미국인이 하위 50퍼센트가 버는 것보다 더 많이 벌고 있다. 

     그러나 불평등의 폭발적 증가만으로는 포퓰리즘의 분노, 그 핵심을 설명할 수 없다. 미국인들은 오래전부터 소득과 재산의 불평등을 참아왔다. 어디서 출발하든 부자라는 결승점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사회적 상승 가능성에 대한 이런 믿음은 아메리칸 드림의 핵심이다. 

     이 믿음에 응해, 주류 정당과 정치인들은 기회의 평등을 늘림으로써 증가하는 불평등에 대응해왔다. 세계화와 기술 혁신으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을 억누르고, 고등교육 이수 기회를 넓혔다(인종, 민족, 성의 장벽을 제거함으로써). '기회 균등'이라는 수사는 규칙을 지키면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누구나 재능이 이끄는 만큼 높이 올라갈 수 있다"는 구호로 요약되었다. 

     최극 몇 년간은 정치인과 정당들 모두 이 구호에 목매다 못해 성경구절인양 받드는 모습이었다.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거, 조지W. 부시, 마코 루비로는 물론이고 민주당의 빌 클린턴, 버락 오바라, 힐러리 클린턴 등이 모두 한결 같았다. 오바마는 이 구호를 약간 변형하기도 했다. 팝송 가사를 본떠 "하면 된다(You can make ir if you try_1957년 진 앨리슨이 처음 불렀고, 롤링스톤즈가 나중에 리메이크)" 라고 했던 것이다. 그의 집권 기간에, 그는 이 구호를 연설이나 공식 발언 등에서 140회 이상 써먹었다. 

     그러나 이런 '사회적 상승 찬가'는 이제 손빈 강정이 되었다. 오늘날의 경제 상황상 사회적 상승은 결코 쉽지 않다. 가난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미국인은 대개 가난한 성인이 된다. 소득 기준 하위 5분위 가정 출신자는 스무 명 가운데 한 명만 상위 5분위에 이르렀고, 대부분은 중산층에 이르지 못했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일은 미국보다 캐나다, 독일, 덴마크, 그 밖의 유럽 국가에서 더 많다. 

     이는 불평등에 대해 미국이 오랫동안 변명해온 '계층 이동 가능성(mobility) 이라는 말과 들어맞지 않는다. 미국인들은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미국은 계급이 뚜렷한 유럽 사회에 비해 불평등 걱정을 덜 해도 돼. 우리 사회에서는 계층 상승이 가능하기 때문이지." 미국인의 70퍼센트는  '가난한 사람이 자력으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으며, 유럽인은 35퍼센트만이 그렇게 여긴다. 이런 사회적 이동성 관련 믿음은 미국이 주요 유럽 국가들에 비해 왜 그처럼 복지제도에 소극적인지 설명해준다. 

     그러나 오늘날 사회적 이동이 가장 잘 일어나는 국가들은 평등 수준 또한 가장 높은 국가들인 경우가 많다. 이를 보면 사회적 상승의 능력은 가난이 주는 압박에서 벗어나려는 개인의 의지보다는 교육,보건을 비롯해 직업 세계에서 개인을 뒷받침해 주는 수단에 대한 접근성에 달려 있는 듯 보인다. 

     최금 수십 년 동안의 폭발적인 불평등 증가는 사회적 상승을 가속화시킨게 아니라, 정반대로 상류층이 그 지위를 대물림해줄 힘만 키워주고 말았다. 지난 반세기 동안, 명문대학들은 한때 특권층 자녀들의 입학에 걸림돌이 되었던 인종, 종료, 성, 민족 등의 장벽을 무너뜨렸다. SAT 는 계층과 가문이 아니라 학업 성적으로 학생을 뽑겠다는 약속과 함께 만들어졌다. 그너나 오늘날의 능력주의는 세습귀족제로 굳어져가고 있다. 

     하버드와 스탠포드 대학생 삼분의 이는 소득 상위 5분위 가정 출신이다. 장학금과 기타 지원책이 후하지만, 아이비리그 대학생 가운데 하위 5분위 출신자는 4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하버드와 그 밖에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소득 상위 1퍼센트(연간 63만 달러 이상)출신의 학생은 하위 50퍼센트 가정 출신 학생보다 많다. 

     노력과 재능 만으로 누구나 상류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미국인의 믿음은 더 이상 사실과 맞지 않는다. 기회 균등에 대한 담론이 과저와 같은 반응을 얻지 못하는 이유라 볼 수 있다. 사회적 이동성은 더 이상 불평등에 대한 보상이 될 수 없다. 빈부격차에 대한 진지한 대응은 무엇이든 부와 권력의 불평등을 직접 다뤄야만 하며, 사다리를 오르는 사람들을 돕는 방안으로는 무마될 수 없다. 사다리 자체가 점점 오르지 못할 나무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평 : 계급에 대한 사회적 이동이 자유롭다는 의미와 사회적 상승 가능성이 개인의 능력보다 해당 국가에서 어떤 수준의 교육,보건을 수단으로 뒷받침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불평등의 가속화와 증가가 계급간 격차를 벌려 왔고, 결국 이 결과는 미래적 능력 가치로 설명될 수 있는 상위 대학진학으로의 불균형한 진학결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지표들이 계급간 능력을 설명하는 결과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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