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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크노크라시(Technocracy) 와 시장 친화적 세계화_MICHAEL J. SANDEL
    '공정함과 정의' 2024. 3. 21.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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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echnocracy - 기술이나 과학적 지식의 소유로 사회의 조직의 사상 결정에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의 형태를 가리킨다. 테크노크라시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을 테크노크라트(technocrat:기술관료) 라고 한다.  

     

    포퓰리즘에 대한 불씨가 가져온 실패의 핵심에는 기득권층 즉, 주류 정당들이 지난 40여 년간 세계화 프로젝트를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수행해 왔느냐가 있다. 이 프로젝트는 두 가지 점에서 포퓰리즘의 반격에 단서를 제공했다. 하나는 이를 통해 공공선(PUBLIC GOOD)을 기술관료적으로 인식하게 되었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승자와 패자를 능력주의적으로 정의 내리게 되었다는 점이다. 

     기술관료적인 정치 개념은 시장에 대한 믿음과 강하게 연관된다. 그것은 꼭 국가 개입이 일체 배제된 자유방임적 자본주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시장경제야말로 공공선을 달성하는 데 기본적 도구라 여기는 것이며, 따라서 더 큰 범위에서 시장을 신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정치를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기술관료적 정치가 이뤄진다. 그것은 실질적인 도덕적 논쟁에 대한 공적 담론을 실종시켰으며, 논란이 있는 이념 문제를 마치 '경제 효율 문제'처럼 전문가가 독단적으로 처리할 문제인 듯 취급했다. 

     이러한 기술관료적 맹신이 포퓰리즘의 불만에 어떤 식으로 판을 깔아주었는지는 쉽게 알 수 있다. 시장주도적 세계화는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그리고 국가적 정체성과 애국심도 약화시켰다. 상품과 자본이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게 되면서 글로벌 경제의 흐름을 탄 사람들은 코스모폴리탄식 정체성을 진보적이고 뛰어나다고 치켜세우면서 보호주의, 종족주의, 갈등 등이 갖는 협소하고 파편적인 정체성과 비교했다. 그들은 이제 '좌냐 우냐'의 기준이 아니라 '열려 있느냐 닫혀 있느냐'의 기준으로 정치를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웃소싱,자유무역 협정, 무제한적 자본 유동성 등에 관한 비판은 '꽉 막힌 생각'일 따름이며, 세계화 시대에 종족주의를 고집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이었다.

     한편 기술관료적 통치 방식은 여러 공적 문제를 기술 전문가들에게 맡김으로써 보통 시민들은 손을 써볼 수조차 없도록 만들었다. 이는 민주적 토론의 범위를 좁히며, 공적 담론의 내용을 공허하게 하고, 개인들이 점점 더 무력감에 빠지게 한다. 

     시장친화적이고 기술관료적인 세계화의 개념은 좌우 주요 정당들에게 고스란히 수용되었다. 특히 중도 좌파 정당이 시장 중심적 사고와 시장적 가치를 수용한 일은 무엇보다 의미심장했다. 이는 세계화 프로젝트의 진행에, 그리고 뒤따른 포퓰리즘의 반격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트럼프가 당선될 즈음 민주당은 기술관료적 자유주의 정당으로서 한때 그 지지기반이었던 노동자와 중산층 유권자 대신 적문직업인들에게 한껏 기울어져 있었다. 브렉시트 당시의 영국 노동당, 유럽의 사회 민주당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변화는 198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로널드 레이건과 마거릿 대처는 '정부는 문제이고 시장이 해답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들이 정치무대에서 물러나자, 미국 빌 클린턴, 영국 토니 블레어, 독일 게르하르트 슈뢰더 등의 중도 좌파 정치인들이 뒤를 이었다. 그들이 시장에 대해 갖는 믿음은 이전의 리더들보다 엷었지만 각자의 사회에서 그 지배를 공고히 하는 데 한몫했다. 그들은 통제받지 않는 시장의 날선 이빨을 어느 정도 무디게 만들었으나, 레이건-대처 시대의 핵심 전제를 건드리지는 않았다. 시장 매커니즘이야말로 공공선을 달성하는 기본 수단이라는 전제였다. 이러한 믿음에 발맞춰 그들은 시장 중심적 세계화를 수용했고 경제가 갈수록 금융화되는 경향을 환영했다.

     1990년대, 클린턴 행정부는 공화당과 손잡고 세계무역협정 추진과 금융 산업 규제 완화에 나섰다. 이런 정책들의 혜택은 대부분 최상위층에게 돌아갔다. 그러나 민주당은 불평등 심화와 금권정치 강화에 대해 별 내색을 하지 않았다. 자본주의를 길들이고 경제권력을 민주적으로 제어한다는 원래의 사명에서 벗어난 진보 진영은 그 매력을 상실해 버렸다. 

     이 모든 것은 버락 오바마가 정치무대에 등장했을 때 달라지나 싶었다. 2008년 대선 유세 때 그는 진보 진영의 공적 담론을 장악해 버린 경영자나 기술관료의 언어에서 극정으로 벗어날 대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대선 후보로서 그가 보여준 도적적 에너지와 시민적 이상주의는 백악관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금융위기 와중에 집권하게 된 오바마는 클린턴 시절에 금융구제 완화를 추진했던 사람들을 경제 고문으로 앉혔다. 그들의 권고에 따라, 오바마는 금융위기를 초래한 책임에 대해서는 불문에 붙이면서 은행들을 밀어주었다. 그리고 금융위기 때문에 집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는 거의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다. 

     그의 입에서 울리던 도덕적 목소리는 침묵에 들어갔다. 오바마는 월스트리트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정책으로 엮어내기보다 그저 무마하는 데 급급했다. 부실기업에 대한 긴급구제가 일으킨 지속적 분노는 오바마 행정부에 그림자를 드리웠고, 마침내 좌우를 망라한 포퓰리즘의 반격에 봉화를 올렸다. 좌파에서는 '월가 점령' 운동과 버니 샌더스의 대선 출마가 있었고, 우파에서는 티파니와 트럼프의 대선 출마, 그리고 당선이 있었다. 

     미국, 영국, 유럽에서 포퓰리즘의 발흥은 일반적으로 집권 엘리트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그러나 그 가장 두드러진 피해는 진보 및 중도 좌파 정당들이 입었다. 미국 민주당, 영국 노동당, 독일 사회당(2017년 연방의회 선거에서 지지율이 사상 최저급으로 떨어졌다), 이탈리아 민주당(지지율이 20퍼센트 이상 폭락했다), 프랑스 사회당(2017년 대선 제1차 투표에서 대선후보가 겨우 6퍼센트 득표했다) 등등.

     다시 대중의 지지를 바라기 전에, 이들 정당은 시장중심적이고 기술 관료적인 통치 방식부터 점검해야 할 것이다. 또한 보다 미묘하지만 그만큼 결정적인 뭔가도 재고해 보아야 한다. 바로 수십 년 동안 불평등이 증가하면서 생겨난, '성공과 실패에 대한 관점'이다. 그들은 새로운 경제 환경에서 빛을 보지 못한 사람들이 왜 '승자가 경멸적으로 깔보고 있다'고 느끼는지 물어볼 필요가 있다. 

     


    평 : 일방적 포퓰리즘은 경계되어야 한다. 다만 대중의 분노 원인을 정책을 통해 무난히 극복하려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하고 기술관료적 통치 방색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공감' 이라는 단어를 되새겨야 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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